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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기합성실험_Acetanilide synthesis A+레포트

    목차

    1. 실험 제목

    2. 실험목적

    3. 이론
    1) 아세트아닐라이드(Acetanilide)
    2) 아세틸화(Acetylation) 및 실험 메커니즘
    3) 아세틸화제
    4) 빙초산을 이용한 아세틸화
    5) 무수초산을 이용한 아세틸화
    6) 염화아세틸을 이용한 아세틸화
    7) 재결정

    4. 기구 및 시약
    1) 실험 시약
    2) 실험기구

    5. 실험방법

    6. 참고사항
    1) 수득률
    2) Acetanilide의 이론적 수득량
    3) 아닐린 반응 시 빙초산+무수물 혼합액을 넣는 이유
    4) 증류와 환류

    7. 참고문헌

    8. 실험결과

    9. 고찰

    본문내용

    3. 실험목적
    Aniline(아닐린)에 아세트산 acetic anhydride(무수물)또는 glacial acetic acid(빙 초산)를 반응시켜 아닐린에 acetyl(CH3CO-) group이 도입되는 acylation(아실화반 응)을 이해한다.

    4. 이론
    1) 아세트아닐라이드(Acetanilide)
    아닐린에 아세틸화 반응이 일어나면 생성되는 화합물이다

    <중 략>

    2) 아세틸화(Acetylation) 및 실험 메커니즘
    유기화합물 중의 히드록시기(-OH)나 아미노기(-NH2)의 수소 원자를 아실기의 일 종인 아세틸기(-COCH3)로 치환하는 반응이다. 아닐린에 무수초산과 빙초산의 혼합 액을 작용시키고 아닐린의 아민기에 아세틸 기(-COCH3)가 도입되어 아세트아닐라 이드(acetanilide)가 생성되는데, 이 반응을 아세틸화(acetylation)라 한다.
    또한, 이 반응은 아실화의 하나로 유기화합물 중의 히드록시기 -OH나 아미노기 – NH2의 수소 원자를 아실기의 일종인 아세틸 CH3CO-로 치환하는 반응이다. 1차 아 민 R―NH2 및 2차 아민 RR‘―NH의 질소원자와 결합하고 있는 수소 원자나 알코올 R―OH 및 페놀 ArOH(Ar는 방향족고리 잔기) 중의 산소 원자와 결합하고 있는 수소 원자는 특히 아세틸화를 일으키기 쉽다. 이들을 구별하기 위하여 ① N―아세틸화, ② O―아세틸화라고 부른다.
    R―NH2 → RNHCOCH3 …… ①
    R―OH → ROCOCH3 …… ②
    아미노기의 아세틸화는 아세트산무수물을 작용시키면 쉽게 진행된다. 알코올이나 페놀의 아세틸화는 염화아세틸 또는 아세트산무수물을 사용해서 반응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아세틸화는 유기합성에서 각종 유도반응과정에서 산화, 환원되기 쉬운 아미노기 및 하이드록시기를 보호하는데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이 아미노기를 보호 하는 역할로서도 본 반응은 중요하다.

    출처 : 해피캠퍼스

  • 세계외교사_요약15_제2차 세계대전 (1939-1947)

    목차

    1. 독일의 폴란드 침공
    2. 폴란드의 붕괴
    3. 독일의 전격전
    4. 태평양전쟁
    5. 연합국의 전시외교

    본문내용

    1. 독일의 폴란드 침공

    폴란드의 위기

    – 독-소 불가침 조약의 체결로 모든 이들이 전쟁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 실감
    – 폴란드 : 프랑스에게 군사물자 지원 계속 요구 → 양국 군사협정 체결
    → 폴란드가 독일 침공 받는 경우 프랑스는 독일의 방어선인 지그프리트 선 공격하기로
    – 영국 : 명백한 태도로 대치, 폴란드에 대한 약속 천명
    → 영국의 확고한 자세에 히틀러는 당초 계획 일부 수정
    – 이탈리아 : 히틀러에게 전쟁 일으키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강조, 전쟁 발발하는 경우 이탈리아는 전쟁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참전할 수 없으나 독일이 무기와 1차 산품 공급해 준다면 참전 가능하다고 덧붙임 → 히틀러는 이탈리아가 참전 회피함을 간파

    독일의 폴란드 침공

    – 히틀러는 프랑스를 이간시키려 함
    – 영국은 히틀러에게 폴란드와 직접 교섭할 것 제의 → 히틀러의 엄청난 제시 → 폴란드의 부분 동원령 발동 → 독일의 폴란드 침공

    2. 폴란드의 붕괴

    폴란드의 붕괴

    – 서방세계는 독일군이 강하다는 인상을 갖게 됨 → 이러한 심리적 요인으로 영국과 프랑스는 폴란드 전투 중 독일에 신속히 반격을 가하지 못함
    – 독일군이 바르샤바 입성 → 폴란드는 역사상 네 번째 분할

    독-소 불가침 조약의 수정 (1939.9.28)

    –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진주는 양국의 불가침 조약에 의해 합의한 것, 그러나 두 나라 군대 진입으로 자세한 분계선 확정이 필요해져 점령 분계선을 피사-나류-부크-비스툴라-신 강으로 하기로 합의
    – 비밀의정서 : 리투아니아를 소련의 영향권에, 양국 국민의 이주 문제 합의

    히틀러의 평화제의

    – 히틀러는 폴란드 문제 해결되자 영국과 프랑스에 평화 제의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의 동부 국경 인정해 준다면 독일은 더 이상 요구 하지 않겠다는 것)
    → 영국 프랑스의 거부, 양국은 전시체제로 개편

    출처 : 해피캠퍼스

  • 세계외교사_요약14_히틀러의 등장과 제2차 세계대전 (1933-1939)

    목차

    1. 히틀러의 등장
    2. 히틀러의 외교정책
    3. 히틀러 외교의 도전
    4. 독일의 재군비
    5. 독일의 라인란트 진주
    6.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
    7. 체코슬로바키아 문제의 대두
    8. 뮌헨 협정과 체코슬로바키아의 붕괴
    9. 체코 붕괴 이후의 유럽
    10. 독일-소련의 불가침 조약

    본문내용

    1. 히틀러의 등장

    1930년 7월 선거

    – 나치당의 급성장 : 1929 대공황 → 독일 경제의 파탄, 실업자의 급증 → 나치로부터 빵과 제복 제공받은 실업자들은 나치당이 그들의 불행을 구원해주리라 믿게 됨, 곤경은 베르사유 체제에 그 원인이 있다고 믿었으며 히틀러만이 그 체제를 타파할 수 있다고 여김

    히틀러의 등장

    – 1919 ‘독일 노동당’ : 히틀러가 가입, 민족주의적 운동 지향
    → 1920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당’으로 명칭 변경, ‘나치’의 당명 탄생
    – 자본가들은 슐라이허의 사회주의 경향을 띤 군사독재와 공산주의 위협을 모두 예방하기 위해 히틀러에게 의존하게 됨 → 1933.1.30 히틀러가 독일 수상에 취임, 공산당 불법화

    2. 히틀러의 외교정책

    히틀러의 초기 외교정책

    – 팽창정책 계속 추구
    – 외교 기본 노선 : 베르사유 체제의 폐지, 독일의 통일, 해외 식민지의 획득 (범 게르만 주의에 입각)
    – 소련혁명은 유태인들이 일으켰으며 볼셰비키들은 모두 유태인이라고 확신
    – 영국과 동맹 가능하다고 믿음, 영국과의 동맹은 해외식민지 획득을 포기해야만 가능하며 그 대신 러시아 지역에 생활권을 설정하고 이를 획득해야 한다고 봄
    – <나의 투쟁>, <제2의 책> → 베르사유 조약의 군사조항 철폐, 동유럽에 형성된 프랑스의 동맹조직 해체, 프랑스를 굴복시킴, 러시아 내에 생활권 획득, 최후로 영국, 미국, 일본과 함께 세계를 지배하는 4강이 되는 것이 외교목표와 전략

    호스바흐 각서 (1937.11.5)

    – 히틀러가 전쟁을 사전에 면밀히 계획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전후 뉘른베르크 재판소에 제출된 문서 중 하나이며 히틀러의 전쟁 책임을 말해주는 자료로 누구나 인용
    – 독일의 기본 목표는 인종공동체의 보존과 유지
    – 독일은 정치, 군사적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체코슬로바키아와 오스트리아를 병합해야 하는데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는 이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며..

    <중 략>

    출처 : 해피캠퍼스

  • 세계외교사_요약12_안정과 혼란의 공존 (1921-1932)

    목차

    1. 로카르노 조약
    2. 평화운동(1) – 군축
    3. 평화운동(2) –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노력
    4. 소련과 유럽 열강
    5. 워싱턴 회의 이후

    본문내용

    – 서유럽 세계에서 안보와 배상 문제로 인한 갈등은 2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정의 단계에 접어듬
    – 로카르노 조약의 체결은 제1차 세계대전의 완전한 종결 의미
    – 독일은 국제연맹 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어 다시 국제사회에 복귀
    – 그러나 서유럽 지역 이외에서는 이미 대전쟁 알리는 불길한 현상 나타나고 있었음
    (로카르노 정신은 독일의 서부국경 지역에만 적용)
    – 소련 -> 근대국가의 탈을 쓰고 있으면서 근대국가 타파를 명분으로 삼음. 이중외교
    -> 서유럽 세계와 명분의 충돌
    – 평화 파괴는 동북아에서 먼저 일어남 : 일본의 만주 침략.
    – 일본 군부 안에서 ‘관동군’이라는 새로운 집단 등장, 일본의 중국 침략에서 제2차 세계대전으로 나아가는 혼란의 시대가 비롯됨.

    1. 로카르노 조약

    슈트레제만 제안 (1925 1-2)의 배경

    – 1923 루르 점령으로 악화된 유럽 정치 분위기는 1924년에 접어들면서 해빙의 징조 보임
    – 로카르노 조약은 이런 분위기의 소산, 이 조약의 체결로 평화의 시기가 도래했다고 보아 이를 ‘로카르노 정신’이라 부름
    -> 로카르노 조약에 관한 교섭은 슈트레제만 독일 외상의 제안으로부터 비롯
    : 베르사유 체제를 당분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
    – 열강의 라인반트 철병 취소 : 연합국 측에서 독일 군이 군축규정을 제대로 준수하지 있지 않다고 판단 -> 라인란트 철병하지 않기로 결정
    -> 슈트레제만은 영국과 프랑스가 동맹 체결할지도 모른다는 정보 입수 + 연합군의 철수와 베르사유 조약의 이행이라는 두 가지를 타협하는 방안으로 불가침 조약의 체결을 제의하기에 이름.
    – 영국이 슈트레제만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중요한 의미 가짐 (베르사유 조약이 개정되기 이전에, 라인란트 지방이 연합국에 의해 점령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영국이 프랑스의 안전을 보장하는 약속을 한 것

    출처 : 해피캠퍼스

  • 세계외교사_요약13_이탈리아와 일본의 팽창 (1922-1937)

    목차

    I. <이탈리아>
    1.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등장
    2. 독일의 재군비
    3.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원정
    4. 스페인 내란 (1936.7-1939.3)
    5. 1936년 후반의 독일외교

    II. <일본>
    1. 만주사변
    2. 1937년의 세계

    본문내용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이탈리아

    – 이탈리아도 서유럽의 로카르노 정신과는 상반되는 정책노선 추구
    – 1922.10 파시스트들의 로마입성으로 최초로 극우정권 수립한 무솔리니 : 국제정치 질서의 수정을 요구하며 다뉴브 강과 발칸 반도로 세력 확장 도모
    – 당시 이탈리아의 구조적 모순 (외국-국내 자본 충돌, 도시-농촌 대립)
    → 1차 세계대전 후 더욱 심화되어 전후에는 거의 정치적 무질서 상태
    → 파시스트들이 로마에 입성하기까지 네 차례 내각이 바뀌었는데 정부는 공산주의자들의 파괴활동을 통제하지 못했으며 이에 경제계의 우려가 심화되었음
    → 결국 경제단체들과 정부기관들은 파시스트 지원

    무솔리니

    – 1921.11 파시스트 국민당 결성
    – 1922.10.28 파시스트들이 로마에 입성 →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출발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발칸진출

    – 무솔리니 : 다뉴브 강 유역과 발칸 반도로 진출하려고 함
    → 이 지역에 이해관계 갖고 있던 프랑스, 소련과 마찰
    – 알바니아 진출부터 시작 : “코르푸 사건”
    → 알바니아-그리스 국경 획정 문제 담당하던 장군이 그리스 영토에서 피살되자 무솔리니가 코르푸 포격, 점령 → 이탈리아는 그리스로부터 상당한 양보 받고 영국의 압력으로 철수
    (무솔리니의 모험주의 노선을 잘 나타내 줌)
    → 알바니아의 조구 : 친 이탈리아 노선, 유고슬라비아와 적대관계
    (유고슬라비아 : 프랑스와 우호관계)
    → 1926.11 무솔리니와 조구(이탈리아-알바니아) 우호동맹 체결
    → 프랑스-유고슬라비아 1927.11 유사한 합의 체결하고 이탈리아에 대항
    → 이탈리아는 다시 알바니아와 20년간의 방어동맹 조약 체결 → 알바니아 완전히 이탈리아 영향권으로 들어감
    – 무솔리니 : 베르사유 조약 수정 요구하는 헝가리와 제휴(1925 무역협정, 1927 우호조약)
    → 현상 타파국가들과의 관계를 공고히 함

    제 8장 제 2절 혼란의 세계외교사

    – 1929 대공황 → 일본으로서는 중국 침략의 절호의 기회

    출처 : 해피캠퍼스

  • 세계외교사_요약11_베르사유 조약 체제 (1919-1929)

    목차

    1. 베르사유 회의의 구성과 원칙
    2. 파리 강화회의의 결정(1) – 베르사유 조약의 내용
    3. 파리 강화회의의 결정(2) – 그 밖의 평화조약들
    4. 파리 강화회의의 결정(3)
    5. 러시아와 오토만 제국의 붕괴
    6. 배상문제
    7. 안보 문제
    8. 워싱턴 회의와 동북아

    본문내용

    – 1919.6.28 정신적인 투쟁의 산물이며 독일의 민족적 자존심을 파멸시킨 문서. 이미 제2차 세계대전을 잉태하고 있었음.
    – 역사적 특징 : 1. 서유럽 세계를 중심으로 한 평화 조약 (동유럽은 전쟁 상태)
    2. 소련이란 정치 집단을 철저히 배제하고 이룩된 평화 조약 (배제의 단계를 벗어나 볼셰비즘 정권을 아예 타파하려는 분위기에서 이룩된 평화 조약)
    3. 서유럽 중심 평화 질서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침략과 비행에는 애써 눈을 감음 (동북아 세계에 대한 일본 침략 인정)
    4.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의 질서 만듦 (이탈리아 문제)
    5. 국제사회의 조직화 필요성 절감, 국제연맹 창설
    6.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를 절충한 산물이기에 매우 불완전한 형태. 국제법 질서는 부정적 현실을 타파하려는 적극적 측면 가짐

    1. 베르사유 회의의 구성과 원칙

    구성

    처음에는 10인 이사회가 최고 이사회 대표. 1919. 3월 하순 부터는 이탈리아 제외한 4인 이사회가 중요한 역할 담당

    회의의 민주주의 형식

    – 연합국들 자신이 비밀외교의 타파와 공개외교의 채택을 표방했기 때문
    – 민주주의에 대한 평등 원칙이 국내정치이건 국제정치이건 정치 명분이 되었기 때문
    – 5국 강국 이외의 국가들은 자국의 입장과 주장을 밝히는 자료들을 이사회에 제출하며 그 대표들이 직접 이사회에 참석해 발언할 수 있게 함. -> 민주주의 방식이 신속한 회의 진행 저해하는 역효과도 초래

    회의의 원칙과 독일 문제

    – 회의의 원칙은 휴전협정 체결의 전제조건으로 독일 정부가 수락한 윌슨의 14개 항목.
    – 이 원칙들은 윌슨의 이상주의 반영, 국제사회의 전면적인 개편을 구상
    -> BUT 그의 이상과 유럽 정치 현실 사이에는 현격한 괴리
    -> 먼저 프랑스 안보문제와 정면에서 충돌 (프랑스 군이 독일의 부흥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데 주력해 영구적으로 라인 좌안 점령, 병합하려 함. 윌슨과 영국 수상의 반대)

    출처 : 해피캠퍼스

  • 세계외교사_요약10_제1차 세계대전 (1913-1919)

    목차

    없음

    본문내용

    제1절 전쟁의 세계화

    당시 유럽의 정세
    → 1890년대
    – 프-러 동맹 VS 3국 동맹. 영국은 다시 고립 정책으로
    – 이탈리아-프랑스 : 교환각서. 3국 동맹의 중대한 수정 의미. 이중외교
    – 독일-영국, 독일-러시아 대립
    – 영국-일본 동맹 (1905 2차 동맹. 1911 갱신)
    – 영국-프랑스 협상 (1904) : 러-일 대립이 전쟁으로 발전할 경우, 프-러 동맹과 영-일 동맹이 현실적으로 발효될 것을 우려해 전쟁 예방 위해 영-프 협상 이루어짐
    → 영국은 더 이상 프랑스를 위협적 존재로 간주하지 X
    프랑스는 영국을 자기편으로, 이탈리아 중립도 보장
    → 3국 협상(영국.프랑스.러시아) VS 3국 동맹(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 구도
    : 군비경쟁, 군사협력 증진 (미국 하우스 대령의 보고)
    → 독일은 오스트리아 외에 의지할 곳이 없어짐
    → 제1차 세계대전발발의 원인
    – 발칸전쟁 : 1912-1913. 러시아의 후원에 의해 발칸 동맹 성립
    발칸국들의 동상이몽 → 몬테네그로 대 터키 선전포고 (제1차 발칸전쟁)
    런던회의 개최 (1912.5) → 불가리아의 선제공격으로 제2차 발칸전쟁 (1913.6-8)
    → 부카레스트 조약 (1913.8) : 터키는 불가리아와 전쟁해 아드리아노플 되찾음
    마케도니아는 세르비아와 그리스에 의해 분할,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 관계 악화.

    출처 : 해피캠퍼스

  • 세계외교사_요약8_세계분할의 완료 (1875-1899, 1913)

    목차

    없음

    본문내용

    – 1890년대부터 유럽시대는 끝났고 비유럽의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는 유럽의 정치가 안정될 수 없는 역사적 단계에 접어들음. 어느 지역 문제이건 전 세계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고 세계는 강대국들의 국제정치 ‘틀’에 들어가게 됨
    – 근대국가 : 식민지 국가, 경제 국가, 군사 국가
    – 식민지 국가로서의 근대 국가 완성 : 유럽 열강의 세계 팽창의 완료
    – 경제 국가로서의 근대 국가 발전과정 : 자본의 무국경성 → 밖으로는 제국주의적 팽창, 안으로는 계급의 갈등 초래. 계급의 무국경성 → 모체인 근대국가에 대항 (공산주의 운동 대두)
    – 군사국가로서 근대국가의 발전 : 군부세력의 등장과 그 강화. 군사기술의 발달로 일시적인 군사동맹이 아니라 군사안보 일반을 염두에 둔 일반적인 군사동맹의 필요성이 대두됨
    – 아편전쟁으로 시작된 유럽 열강의 동북아 진출은 1894 중일전쟁과 1904 러일전쟁으로 완료
    – 1882년 영국의 이집트 병합으로 유럽의 아프리카 분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1902년 보어 전쟁의 종식으로 이 지역의 잠식도 끝남 → 유럽 열강은 다시 지중해와 발칸으로 돌아감

    1.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분할

    이집트 문제

    – 유럽 이외의 국가들이 근대화, 서구화 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 → 외국 차관에 의존
    – 이집트 : 1875-1876 이스라엘의 근대화 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영국과 프랑스 부채의 상환이 불가능해짐 → 이집트의 재정상태 악화, 국제정치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
    → 1876.11 영국, 프랑스 이집트 경제를 공동으로 지배키로 합의 (~1882)
    – 1882 ‘강베타 각서’ : 이집트의 현존체제가 더 위험을 받게 되면 간섭하겠다고 경고
    → 독일은 영국-프랑스가 긴밀하게 되자 국제회의 소집 요구 (1882.6 콘스탄티노플 대사회의)
    – 이집트의 국내 사태 혼미, 외국에 대한 저항 강베타 각서 문제로 더욱 격렬
    → 튜픽(이집트 태수) : 민족주의자들로 구성된 사미내각 구성
    → 양국은 이 내각의 해체를 요구하는 최후통첩 보냄
    – 1882.7 영국은 군사행동 결심 (수에즈 운하의 자유 운행 보장 위해)
    → 영국 :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공동보조 요청하였으나 이들은 군사개입이 초래하게 될 국제적인 여파를 우려해 군사동원 기피. 영국의 단독 군사행동 (~1954 까지 군사점령)

    출처 : 해피캠퍼스

  • 세계외교사_요약9_청일전쟁과 러일전쟁 (1894-1912)

    목차

    없음

    본문내용

    – 중일전쟁(1894-1895) : 두 나라가 서유럽으로부터 수입한 군사국가의 형식에 의해 최초로 치른 전면전쟁. 완전한 의미의 근대 전쟁이라기 보다는 서유럽 세계에 의해 조종된 전쟁이었음
    – 중국 : 영국의 돈줄에 의해 전쟁 수행 가능했음 (전후 배상금도 영국 차관으로 지불)
    – 일본 : 영국의 후원 아래 승리할 수 있었음
    – 영국 : 러시아에 대한 견제세력으로 중국보다는 일본을 지목
    – 3국 간섭으로 일본은 수입된 군사국가의 형식이 아직도 완성되지 못한 것을 자각하고 군비증강에 몰두해 러일전쟁의 길로 나아간다.
    – 중일전쟁으로 중국 대륙은 사오분열 됨.

    1. 전쟁 원인론

    전쟁원인에 관한 견해들 – 정치적인 측면

    – 중일전쟁은 1894년에 있었던 양 국간 최초의 근대적인 전면전쟁
    – 일본의 계획적인 도발로 발발된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일본이 전쟁을 왜 도발했느냐에 의견 다양
    – 정치.군사적인 측면 강조 : 1890년대의 국제정세 또는 당시 일본의 국내 정치상황에서 전쟁의 원인을 찾는 견해가 있음 (경제공황으로 말미암아 도시, 농촌을 막론하고 빈민 문제가 큰 사회문제가 되었고 이 해결의 길을 중일전쟁이라는 해외진출에서 찾았다는 것, 갑신정변 이후 조선에서의 정치적 후퇴를 만회하는 길은 중국과의 전쟁밖에 없게 됐다는 것)
    – 메이지 유신 이래 일본의 일관된 대외팽창의 역사적인 경향으로 설명하려는 견해 : 중국과의 전쟁은 일본 역사상 필연적으로 일어날 전쟁이었으며 단지 1894년이라는 특정한 시기에 발발한 것은 개전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이 그때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것
    – 메이지 유신 이래 해외침략의 길을 걸어온 일본이 1890년에 이르러 침략의 첫번째 대상이 조선이라고 지목하고 이것을 이익선이란 명분으로 호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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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외교사_요약7_새로운 동맹들의 형성 (1891-1904)

    목차

    없음

    본문내용

    – 1890년에 들어서면서 ‘현대적’인 특징들 나타나기 시작, 동맹들이 새로 형성되어 제1차 세계대전을 향해 박차를 가하기 시작
    – 이렇게 형성된 세력들이 투쟁적인 집단 심리와 결부되어 서로 적대, 동맹들은 더욱 경직
    – 영국과 러시아의 대립구도에서 영국과 독일의 대립구조로 바뀜
    →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 예고
    – 비스마르크 후임자들 : 러시아와 연결 단절, 러시아는 프랑스나 영국으로 가는 길로.. 식민지 문제로 프랑스는 영국과 다시 연결
    – 비스마르크 계승자들이 ‘세계정책’ 추진하자 동북아 지역에서도 ‘독일’ 이라는 요소 등장
    → 중국 : 본격적으로 분할의 단계에 들어감
    → 일본 : ‘수입된 국가’ 형태인 근대국가의 탈을 수용하는데 성공, 1890년 보편 선거로 제국의회 성립, 한반도를 ‘이익선’으로 선언, 중국과 대립할 것 공언
    → 조선 : 1880년 이후 ‘변형된 사대질서’ 속에서 고민하였으나 1890년 이후로 중국과 일본의 각축장으로 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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