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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바이킹
1) 함선과 항해술
2) 군대
3) 전술
3. 헤이스팅스 전투
4. 성과 요새
1) 성의 변화
2) 성의 구조
3) 공성전
5. 맺음말
본문내용
4세기에 시작된 게르만족(Germans)의 이동은 서로마제국 멸망을 초래했고, 중심지를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놓는다. 이러한 게르만족의 이동은 서양사에서 고대와 중세를 구분짓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이는 곧 게르만족의 이동이 유럽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후 프랑크족들에 의해 프랑크 왕국(Frankenreich)이 세워지고 카를 마르텔(Charles Martel)이 교황으로부터 로마 황제의 관을 받으면서 게르만족의 이동에 의한 혼란은 끝이 난다. 또한, 게르만족의 이동 당시에 파괴되었던 문화를 다시 부흥하고자 하는 카롤링거 르네상스(Carolingian Renaissance)가 일어나며 유럽에는 지방 분권적인 형태의 봉건제도를 비롯한 중세 여러 제도의 모체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렇게 8세기에 들어 혼란이 수습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9세기에 곧바로 다시금 이민족들의 이동과 침입이 일어난다. 9세기에 들어 동쪽에서는 알타이(Altai)어계통의 마자르족(Magyars)이 헝가리를 중심으로 동부프랑크 일대를 위협하고, 남쪽에서는 이슬람(Islam)세력이 다시 준동하기 시작하여 시칠리아(Sicilia), 코르시카(Corsica) 지역 일대가 점령당한다. 그리고 이들과 더불어 가장 긴 기간 동안 넓은 지역에서 활동한 북방의 노르만족이 있다. 노르만족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바이킹(Viking)으로 불리면서 유럽의 해안지역을 파괴하고 약탈하며 유럽인들의 공포의 대상이 된다.
바이킹도 앞서 언급한 게르만족과 마찬가지로 유럽의 변화를 불러온다. 이는 그들의 약탈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성채가 발달했고, 귀족들은 그들의 약탈로 부터 주민들을 보호함으로써 중세사회의 기반이 되었던 봉건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까닭이다. 이뿐만 아니라 바이킹은 유럽 내에서 국가를 수립하고 전쟁을 일으키면서 이전의 전쟁과 비교해서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
출처 : 해피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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