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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을 펼쳐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둠에 갇힌 조정과 그곳에서 애를 태우는 임금의 모습이다. 그 시기 조선은 병자호란이라는 거대한 위협을 온몸으로 겪게 된다. 압록강을 넘어온 청의 움직임은 무서웠다. 불길이 하늘에 닿을 듯했고,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작가 김훈은 바로 그 혼란의 한가운데를 깊이 파고든다. 그는 삭막한 눈길과 바람 속에 남한산성의 상황을 보여준다. 몇몇 인물의 심리나 표정이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르는 듯하다. 짧은 대화나 비통한 숨소리로도 전해지는 절박함이 있다. 적이 성문 밖에 깔렸는데, 성 안에서는 자존과 체면 때문에 속마음을 감춘다. 그 모습이 어쩐지 처연하게 느껴진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보라를 퍼부을 듯하고, 바깥에는 청의 군대가 막대한 힘을 과시한다. 성 안에는 인조가 움츠린 채로 백성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되뇌지만, 속으론 어쩔 줄 몰라 한다. 작중에서 인조가 무기력한 태도를 보이는 대목이 많다. 임금이지만 현실적 방도는 찾기 어렵고, 주전과 주화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자세를 보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라를 이끌어야 할 사람조차 이 거대한 파도 앞에서 극복의 길을 쉬이 결정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두드러진다. 겉으로는 체면을 차리면서도, 실제로는 공포를 떨쳐내지 못한다. 주변 신하들 역시 권력 다툼과 정치적 이득을 생각하며 각자의 목소리를 높이는데, 사태는 점점 더 복잡해진다. 특히 청의 군사적 압박 속에서 한 나라의 운명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 소설은 백성의 고통을 미화하지 않는다. 남한산성 안에 갇힌 사람들의 식량 사정은 점차 심각해지고, 병든 이들은 이겨낼 힘을 잃어간다. 마을은 불에 타서 엉망이고, 성 안 사람들은 견디기 벅찬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린다. 적군의 진영을 바라보면 끝없는 절망감만이 떠오른다. 작품 속에 흐르는 분위기는 냉혹하다. 말 한 마디가 조정 내부의 의견을 분열시키고, 그 틈에서 서로의 체면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진정한 희망이 어디에 있는지 대답하는 이는 없다. 차라리 하늘만 바라보며 눈물이 난다.
출처 : 해피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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