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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전달자로서의 예술> : 예술이란 무엇인가?
2. <미적태도론 비판> : 미학이론 스톨니츠의 미적태도론 비판
3. <의도주의지지> : 미학이론 중 의도주의를 지지하는 입장
본문내용
하지만 왜 같은 대상을 바라보고도 사람들은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요인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위에서 언급한 상호작용 단계에서 개인마다 상호작용의 요소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에는 개인의 경험, 지식, 그 시점의 기분, 상황 등이 있다. 즉, 화학식에 들어가는 원소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에 다른 정감을 이끄는 것이다. 두 번째는 결함(fault)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정신적, 심리적 결함을 가진다. 이것은 그들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말하려 함이 아니고, 이 같은 명제에 대하여 규범적 논의를 하고자 함도 아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스트레스, 노이로제, 심리적 불안, 트라우마, 우울증 등의 크고 작은 심적 장애가 있다. 따라서 상호작용 단계에서 이와 같은 제3의 요소가 개입하여 다시 한번 감정의 개인차가 생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같은 요인들을 배제한다면 명백히 올바른, 마땅히 느껴야 할 옳은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스톨니츠의 이론은 위와 같은 올바른 감정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같은 파괴적인 주장은 미의 기준을 상실하게 만들고, 질서의 붕괴를 초래할 뿐이다. 그는 뒤샹의 ‘샘’이 미적태도론을 강화하는 예시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틀렸다. 뒤샹의 샘이 미적인 것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존 관습의 타파와 혁신적이고 새로운 시도라는 ‘대상의 속성’을 내포하였기 때문이다. 혹자는 샘의 변기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며 어떠한 물건이든 샘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가치가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기존의 예술품이 아닌 ‘아무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샘은 ‘혁신’이라는 아무 물건의 속성과 배경에 기인한 가치일 뿐이지, 미적태도로 바라본 모든 대상이 더 이상 샘이 될 수는 없다. 즉, 뒤샹의 샘은 미적태도론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반증하는 예시이다.
출처 : 해피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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