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어떻게 시작되(하)는가

목차

1. 들어가는 말
2. 칼빈주의
3. 알미니우스주의
4. 해결책?
5. 서로 다른 배경(문맥)
6. 나가는 말
7. 참고. 신학의 틀을 넓혀야 한다

본문내용

구원은 어떻게 ‘시작’(할)될까? 구원을 수동적으로 이해할 때, 시작된다고 표현하며, 능동적으로 이해할 때, 시작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두 가지 표현 중 무엇이 맞는가? 이 주제는 신학적으로 확연히 갈라져 있는 주제지만, 실천적으로는 유사해 보인다. 순복음의 어느 목사는 칼빈의 신학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하지만 전면에 내세운 신학은 성결교단과 80% 같으며, 실천적으로는 알마니안의 그것과 똑같아 보인다. 칼빈의 신학을 지지하는 소위 보수적 교단에서도 전도에 대해 동기부여를 할 때, 애써 하나님의 주권은 잘 다루지 않으려 한다. 믿음의 내용은 신앙생활에 반영되어야 한다. 하지만 잘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그 이유가 뭘까? 함께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출처 : 해피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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