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론

목차

Ⅰ. 윤동주의 삶과 작품 활동
Ⅱ. 윤동주의 작품
Ⅲ 참고 문헌

본문내용

Ⅰ. 윤동주의 삶과 작품 활동
1. 윤동주의 어린 시절
윤동주는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북간도라는 특수한 지역에서 태어났다. 북간도라는 특수한 지역은 윤동주의 삶, 그리고 윤동주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간도는 일본이 을사늑약을 통해 조선을 보호국으로 삼고 수탈을 강화하자,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지배를 피하거나 구국 운동을 위해 이주한 지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간도에서는 조선을 지키고 조선의 민족성을 잃지 않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간도에 사는 우리 민족은 수많은 위협을 받으며 살아가야 했다. 간도라는 지역이 지닌 이러한 특성과 분위기는 윤동주가 특히 더 민족과 독립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27년의 짧은 인생 중 절반 이상인 14년을 윤동주는 명동마을에서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명동문화와 마을의 환경은 윤동주의 생애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윤동주의 시적 감수성과 정신은 이곳에서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윤동주는 그의 아버지인 윤영석의 시적 기질을 닮았을 것이라 한다. 윤영석의 친지들의 평으로는 윤영석이 시적 기질이 있는 인물이었다고 말한다. 이야기를 할 때는 물론이고, 특히 교회에서 공공기도를 할 때 보면, 윤영석의 기도는 시적이었다고 전해진다. 윤동주의 민족의식은 무엇에 영향을 받았을까? 윤동주의 어머니 김용의 친오빠인 김약연은 동만의 대통령이라 불렸으며 명동학교를 세운 사람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윤동주의 가정환경에 깊은 민족의식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간도라는 지역이 지닌 특성과 분위기에 의해 민족과 독립에 관해 생각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이어, 우리 민족의식을 가르치고 고취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명동학교와 깊은 관련이 있는 가정환경은 윤동주의 깊은 민족의식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우리가 윤동주와 함께 알고 있는 윤동주의 고종사촌인 송몽규는 윤동주에게 중요한 인물이다. 송몽규는 윤동주와 같은 학교를 다니며 비슷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이 둘은 평생을 동반자처럼 살았다. 윤동주에게 송몽규는 생사를 함께 나누었던 가족이자 죽마고우인 것이다.

출처 : 해피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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