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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프랑스 혁명
본문내용
프랑스 혁명은 흔히 자유, 평등, 형제애의 혁명이라고 한다. 1789~1799년에 이르는 10년간 혁명의 주체들은 역사에 길이 남을 여러 유산을 남겼다. 신분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선언했으며 국민이 국가의 주인 됨을 천명했다. 중세의 잔재인 봉건제를 폐지했고, 선거로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고 자발적으로 정치적 결사를 조직하거나 봉기를 일으키는 등 각양각색으로 정치에 참여했으며 그 과정에서 군주제가 폐지되고 프랑스 역사상 최초의 공화정이 들어서는 실험이 진행됐다. 그러나 자유, 평등, 형제애와 같은 이상적 진보의 이면에 혁명은 다른 상징을 하나 만들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단두대(기요틴)’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프랑스 혁명에 부여되는 역사적 중요성과는 별개로 혁명에 과격함과 공포의 분위기를 덧입힌다. 자유, 평등, 형제애는 단두대의 법칙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 혁명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단두대에서, 감옥에서,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혁명이 선언한 새 시대의 원칙들에도 불구하고 혁명의 특정단계마다 이러저러한 범주의 사람들이 혁명의 혜택으로부터 배제되었다. 프랑스 혁명은 진정, 자유와 평등과 형제애의 혁명이었을까?
1. 프랑스 혁명은 왜 일어났는가?
구체제의 모순
프랑스 혁명의 원인은 혁명 전 프랑스 사회, 즉 구체제(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의 모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 핵심은 신분제와 봉건제의 부조리였다. 혁명 전 프랑스에는 중세적 신분위계질서가 잔존해 있었다. 수백 년의 시간이 흘러 사회가 크게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사회 조직의 원리로 봉건체제가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체제가 뒷받침해주는 특권층의 면세혜택은 문제의 근원이 되었다.
제1신분인 성직자는 약 18만 명으로 2800만에 이르는 프랑스 전체 인구의 1%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제1신분은 프랑스 전체 토지의 10%를 소유한 대지주였고 종교생활 외에도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담당했다
출처 : 해피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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