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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에 존 케이지의 <4분 33초> 연주 영상을 보았다. 피아니스트는 4분 33초 동안 악보를 넘기고 손 제스처만 했으며 어떠한 음도 울리지 않았다. 그 침묵의 시간을 채우는 것은 피아노 선율이 아닌 관중석으로부터의 일상잡음이었다. 관중석의 소리로만 가득한 4분 33초가 지난 후, 피아니스트는 일어섰고 관중석에서는 박수갈채가 나왔다. 영상의 박수 소리를 들으며, 내가 만약 저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았다. 아마 나는 박수 소리 가운데 한숨 소리를 집어넣었을 것이다. 그리고 혼자서 읊조렸을 것이다. “이건 음악이 아니야.”라고.
나는 <4분 33초>를 음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음악은 예술의 카테고리 중 하나이며, 예술 작품은 창작자와 수용자가 협동하여 만들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수용자의 자유로운 해석을 존중하는 것도 좋지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들인 작곡가의 ‘노력’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4분 33초>는 작품의 대부분을 수용자에게 맡겨버렸다. 작곡가가 시간을 단위로 악장을 구분하고 처음과 끝을 정했다고는 하나, 수용자가 음악의 내용 전개부터 전하고자 한 메시지까지 모든 것을 만들어야 했다. 이 정도면 <4분 33초>의 작곡가는 존 케이지가 아니라 관객이라고 봐야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그럼에도 <4분 33초>가 의미 있는 작품이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4분 33초>는 세상이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 ‘발상의 전환’이 어떤 건지는 수용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출처 : 해피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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