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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11세기 전후, 고려 해상(海商)의 활동 변화
1) 성종(981-997) 이전, 고려 해상의 활동
2) 성종 이후, 고려 상인의 활동 위축과 송상의 내항
3. 11세기 고려 해상의 활동 위축 원인
1) 동아시아의 정세
2) 고려의 정책
3) 기타 원인 : 선박 구조의 차이
4. 맺음말
본문내용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대외 무역은 해상 활동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다. 특별한 수단이나 기술이 필요치 않은 육지와 달리, 바다와 강을 통한 교류는 조선술과 항해술이 필요하고 풍랑으로 인해 조난당할 위험이 상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이전까지, 해운은 사람이나 무거운 짐을 대량으로 적재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속도까지 빨라서, 꽤 효율적이고 편리한 방법이었다. 게다가 한반도는 대륙과 연결된 북부는 정치적인 이유로 왕래가 자유롭지 않았던 반면, 나머지 삼면은 바다이고, 배가 다닐만한 하천들이 많아 선사시대부터 해상 및 수로 교통이 발달하였고, 중국 및 일본과 바다를 통해 교류하였다는 사실이 기존의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특히 서해를 통해 절강(浙江)지역 과의 교류가 활발하였는데, 중국과의 교역은 정치, 외교 및 경제와 문화적 차원에서 상당히 중요하였다.
중세의 한반도에서도 해상 교역의 중요성과 역할은 마찬가지였다. 고려의 북부는 거란(이후 遼)과 여진(이후 金)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려는 건국 이후부터 원 간섭기에 이르기까지, 서해를 통해 조공무역의 형태로 중원왕조와 교역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고려의 국제 교류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국가무역 이외에도 민간 해상의 활동에 주목해야 한다. 羅末麗初 시기의 한반도에서는 민간 차원에서 활발한 해상 활동이 이루어졌다. 게다가 송대 이후의 중국에서는 동남아시아를 넘어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까지 민간 상인들의 활발한 교역 활동이 행해졌는데, 그 주변지역으로서 고려의 예성강과 수도 개경 또한 다양한 국적의 상인들이 왕래하는 지역으로 성장하였다.
이때 고려의 해상 교역사에서 고려 전기는 독특한 변화를 보이는 시기이다. 고려 전기의 가장 핵심적인 교역 상대는 송(宋)이었다. 『고려사(高麗史)』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것만 해도, 송상이 고려에 내항
출처 : 해피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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