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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는 논문 「1900년대 초반 신채호 “민족” 개념의 계보와 동아시아적 맥락」에서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의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국민’과 구별되는 ‘민족’의 개념과 그의 민족주의의 형성 바탕을 동아시아적 맥락에서 분석하고 있다.
1900년대부터 신채호는 ‘국민, 민족’과 같은 단어를 주로 쓰며, 여전히 전통적 색채를 띤 용어인 ‘인민, 백성’등의 용어를 주로 사용하던 동시대의 논객들과 구별되는 면모를 보였다. 저자는 신채호의 저술을 바탕으로 ‘국민’과 ‘민족’의 차이를 분석하는데, 신채호가 조선인 공동의 역사와 성질을 바탕으로 하는, 경쟁적이고 대타적(對他的) 성격을 지닌 공동체를 민족으로 보고 있다고 정리하였다. 이는 정치 이데올로기적인 ‘국민정신’이 추가로 요구되는 국민보다 더 자연발생적인 단위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더 원초적인 단위인 신채호의 ‘민족’은 “혈통 공동체”라는 가장 핵심적인 특성을 지녔다. ‘공동의 종교, 성격, 영토 및 역사적 운명’이라는 조건보다도 더 필수적인 요소는 ‘혈연’이었다. 따라서 민족은 일종의 ‘가족’이었으며, 이에 따라 공동의 가부장인 ‘단군’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다. 그리고 민족 구성원은 단군의 자손으로서 평등과 단결 의식을 공유할 수 있었고, 문중(門中)의 유대감이 민족단위로 확장되면서 기존의 신분제적 정체성은 힘을 잃었다. 또한 민족에 대한 애국심은 유교적 덕목인 ‘효’와 연결되었고, 현 세대의 행동의 결과는 자손인 후세대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신채호는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민족을 세계적인 ‘생존 경쟁의 단위’로 보았으며, 혈족(血族) 사이의 투쟁도 경쟁력 성장의 장으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의 민족 인식은 민족사 서술로 연결되었는데, 통치 주체인 왕조와 대한제국의 신민이 중심으로 하는 역사 서술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근대 사학의 효시로 평가받기도 한다.
출처 : 해피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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